12안식년인가 아니면 안쉴년인가
안식년인가 아니면 안쉴년(?)인가?
선교사들이 안식년이 되어 들어오면 자조 섞인 말로 하는 고백 중 하나가 안식년이 아니라 안쉴년이라는 농담을 자주 듣는다. 그 말속에는 많은 내용을 함축하고 있음을 보게 된다. 원래의 목적과는 다르게 적용되고 있다는 반증이다. 무엇이 문제일까?
지금은 너무나 당연시되는 선교사의 안식년 제도, 그러나 여전히 안식년을 맞는 선교사들을 맞이하는 교회와 선교단체들의 상충된 이해들로 인해 원래 그 의도와는 다른 결과들이 종종 나타나기도 한다. 너무나도 꼭 필요한 제도이지만 실제로는 안식년을 성공적으로 보내는 경우가 그리 많지 않은 것이 현실이다.
안식년에 대한 일반적인 이해와 나타나는 이슈들이 무엇인지를 논의함으로 보다 효율적이고 정말 선교사에게 도움이 되는 안식년 선교사를 맞는 교회와 선교단체들을 위한 제안을 하여 보고자 한다.
안식년에 대한 일반적인 오해
선교단체들과 교단선교부들은 그래도 1980년대 중반부터 안식년 제도를 의무화하여 선교사들이 다음 사역을 준비할 수 있는 시간으로 사용하여 왔다.
그러나 초기에는 선교사 안식년 제도에 대한 일반 교회와 그리고 교회 지도자들의 편향된 그리고 곱지 않은 시선으로 바라보는 경향도 있었던 것도 사실이다.
1970, 80년대 한국사회는 경제적으로 매우 어려운 시기였다. 그런데 그때 당시에 교회가 선교사를 파송한다는 것은 매우 드문 일이었고, 그리고 파송 받는 선교사들은 대체적으로 한국교회에서는 꽤나 고급(?)
인력층에 속하는 사람들이었다.
대부분 영어를 잘하는 그리고 해외에서 유학을 하였거나 서양선교사들과 연결고리들이 있었던 교회 엘리트 그룹들이 선교사로 나가는 경우가 많았다.
그리고 대부분은 아시아의 국한된 몇몇 국가들이었고, 간혹 북미주나 남미 지역 한인교회에 선교사로 파송 받던 시절이었다.
그리고 그때는 선교사들의 안식년은 그야말로 안식년(Sabbatical year)이었다. 성경대로 7년이 되는 해에 일년 동안 사역을 쉬는 그런 개념이었던 것이다.
첫 번째, 이러한 이유 때문에 많은 교회들은 선교사들의 이 안식년이 곱게 여겨지지는 않았던 듯하다.
해외여행을 하기도 힘든 세상에,
목회자는
2-30년을 목회를 해도 휴가조차 제대로 가기도 힘든 시절 선교사들의 이러한 방학(?)이 쉽게 이해되기도 힘들었을 것이다. 지금도 가끔 일선에서 그리고 개척교회 상황에서 목회하시는 목회자나 교회 중직들을 만나면 이런 푸념 섞인 이야기를 듣게 된다.
무엇이 문제일까? 내 생각에는 그것이 아무리 훌륭한 제도라 할지라도 일차적으로는 안식년제도의 출발은 서구 선교단체에서 시행되던 제도였고, 한국의 교회적 입장에서 보면 선교지에서 살고 해외를 자주 이동하는 선교사들은 이미 사역지에 있는 자체가 매년 안식년처럼 보여졌다는 점일 것이다. 이러한 것을 드러내 놓고 솔직하게 한국교회의 속내였음을 아무도 이야기 하지 않았던 것이다.
두 번째, 안식년의 용어에서 오는 뉘앙스가 안식년이 새로운 전투를 준비하는 재충전하고 재무장의 개념보다는 일년간의 긴 휴가나 업무정지의 개념으로 보여졌던 것도 한 몫을 한 셈이다.
이러한 이유 때문에 서구의 많은 선교단체들도 안식년(Sabbatical
year)이라는 개념보다는 본국 사역 기간(Home assignment year)으로 사용하고 있다.
즉 안식년을 통해서 얻어야 하는 목적은 단순한 쉼의 시간이 아니라,
지난 사역을 평가하고 다음 사역을 준비하는 마치 주어진 과제를 완수하는 기간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한국선교의 페러다임의 변화를 읽어야 한다.
90년초 3천명도 안되던 한국선교사의 숫자가 90년대 후반부터 2만7천명이 넘는 놀라운 변화가 있었다.
그리고 우리가 의식하지 못하는 사이, 한국사회는 놀라운 변화가 있었고 그 중 가장 두드러진 변화는 한국경제의 규모가 달라졌고 세계10대 경제대국으로 한국이 성장하였다는 점이다.
1988년 올림픽을 기점으로 하여,
일반인이 여권조차 갖기 힘든 시절에서(그 시절 여권을 소지하려면 신원조회를 거쳐
6개월 정도의 시간이 소요 되었다) 이제는 2-3일이면 구청에서 손쉽게 여권을 만들고 해외 여행을 할 수 있는 그런 여행대국이 되었다.
이제는 외국에 나가는 것이 부러움의 대상이 아니고,
그리고 외국에서 사는 것이 이제는 불편하고 오히려 정말로 고생한다는 생각을 할 정도로 한국 내의 생활수준이 그만큼 달라졌다는 것이다.
그리고 영어를 하는 것이 더 이상 엘리트(?)로 취급되지 않는 한국 사회의 국제화도 이러한 변화 가운데 두드러진 점일 수 있다.
하나님은 이러한 사회적 변화를 통하여 한국교회의 선교적 페러다임을 바꾸고 계셨던 것이다. 그럼에도 아직 안타까운 것은 교회의 변화가 사회변화의 속도를 따라잡지 못하는 경향이 여러 곳에서 보여지고 있다.
지역 교회의 선교전략과 행정도 놀라운 세상과 사회의 변화 그리고 선교적 페러다임의 변화에 부응하지 못하고 아직도 전통적인 개념과 틀 안에서 머물러 있는 낙후성(?)을 나타내 보이기도 한다.
나타나는 이슈들 가운데 하나는 안식년 선교사들이 체류할 거주시설들이 턱없이 부족하다는 점이다. 그리고 안식년이 되어서 들어오면 교회의 선교보고를 하고 난 이후에는 교회에 자주 나타나는 것이 바늘 방석인 것처럼 느껴지는 불편함이 있다.
2-3주 교회를 출석하면 “선교사님, 언제 나가세요?”
라는 인사말을 끊임없이 듣게 된다. 매번 설명하기도 여간 부담스럽지 않다.
결론적으로 재충전은 커녕 안식년이 고통이 되어 버리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 선교사들의 하소연이다.
변화가 필요하고, 그리고 안식년 선교사를 돕는 새로운 인식의 전환이 필요하다는 점이다.
안쉴년을 안식년으로 바꿀 수 있는 묘안과 팁이 우리에게 필요한 것이다.
앞으로 보다 구체적인 문제접근을 해 보도록 하자.